후손을 위하여 축복의 씨앗을 심는 사람

우리 인간은 매일매일 미래를 위한 씨를 심으며 산다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2026-09-16(수) 14:13
한 여객선이 심한 폭풍우로 항로를 잃고 헤매다가 어느 무인도에서 난파되었습니다.
승객들이 머리를 모아 아무리 의논해도 무인도를 빠져나갈 방법이 없었습니다. 난파된 배 주위를 살펴보니 다행히 몇 달 먹을 식량과 씨앗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사는 날까지 살아야 했기에 씨앗을 심기로 결정, 땅을 팠습니다. 한데 황금덩어리가 나왔습니다.
그들은 씨앗 뿌리는 것도 잊고 황금을 캐느라 온 무인도를 동분서주했습니다. 몇 달 후, 황금은 산더미같이 쌓였고 그들은 누구나 할 것 없이 모두 다 지쳤습니다. 그런데 설상가상을 식량까지 바닥났습니다. 그때서야 그들이 씨앗을 뿌리려고 했지만 때는 이미 늦고 말았습니다. 훗날 그들 모두 황금더미 옆에서 굶어 죽은 시체로 발견되었습니다. 누런 덩어리 쌓음이 사는 길이 아닙니다. 미래를 심어야 합니다. 믿음의 씨앗, 사랑의 씨앗, 나눔의 씨앗을 먼저 심어야 합니다. 그래야 내일, 또 내일이 있습니다.
미국 샌프란시스코의 로스알데 힐이라는 작은 마을에 요한이라는 집배원이 있었습니다. 그는 젊었을 때부터 마을 부근 약 오십 마일의 거리를 매일 오가며 우편물을 배달해왔습니다. 어느 날 요한은 마을로 이어진 거리에서 모래 먼지가 뿌옇게 이는 것을 바라보고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비가 오나 바람이 부나 하루도 빠짐없이 다녀야 하는 길이 이렇게 황폐하다니… 앞으로도 오랜 기간을 흙먼지만 마시고 다녀야 한단 말인가.' 요한은 정해진 길을 왔다 갔다가 하다가 그대로 인생이 끝나버릴지도 모른다는 황막감을 느낀 것입니다.
풀, 꽃 한 송이 피어 있지 않은 모랫길을 걸으며 요한은 깊은 시름에 잠겼습니다.
그러다가 그는 무릎을 '탁' 치며 혼잣말로 중얼거렸습니다. "어차피 나에게 주어진 일이고 그것이 매일 반복되는 것이라면 그저 구경만 할 수는 없잖은가? 그래, 아름다운 마음으로 내 일을 하자! 아름답지 않은 저것은 아름답게 만들면 되지 않은가?" 그는 다음날부터 주머니에 들꽃 씨앗을 넣어 가지고 다녔습니다.
그리고 우편배달을 하는 짬짬이 그 꽃씨들을 거리에 뿌렸습니다.
그 일은 그가 오십여 마일의 거리를 오가는 동안 하루도 쉬지 않고 계속되었습니다.
이렇게 여러 해가 지나자 그가 걸어 다니는 길 양쪽에는 노랑, 빨강, 초록의 꽃들이 다투어 피어났습니다.
봄이면 봄꽃들이 활짝 피어났고 여름에는 여름에 피는 꽃들이, 가을이면 가을꽃들이 쉬지 않고 피어나 그가 가는 길을 환영해주었습니다.
그 꽃들을 바라볼 때마다 요한은 더 이상 자기의 인생이 외롭지도 황막하지도 않다고 생각했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그 긴 거리에 이어진 울긋불긋한 꽃길에서 휘파람을 불며 우편배달을 하는, 수채화같이 아름다운 그의 뒷모습을 보다가 자기들도 주머니에 꽃씨를 넣어 가지고 다니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한인들이 러시아로 이주하기 시작한 것은 1863년이었습니다.
러시아의 한인들은 부지런하고 적응력이 강했습니다.
러시아는 여러 가지 정치적 이유를 내세워 이러한 한인들을 교묘히 이용했습니다.
연해주 일대의 미개간지를 개척하게 한 후 이 개간지를 빼앗고 1937년부터는 중앙아시아 미개간지로 한인들을 추방했습니다.
블라디보스톡에서 타슈겐트까지의 조선인 강제 이송이 그것입니다.
그들은 부동산은 물론 동산, 가축 어느 한 가지도 가져갈 수 없었습니다.
40일 동안 기차를 타고 카자흐스탄의 집 한 채 없는 허허벌판에 버려진 한인들은 땅굴을 파고 민들레와 야생식물 등을 의지해서 허기진 배를 채웠습니다.
그리고 가지고 온 밀과 귀리와 완두콩을 심었습니다.
이 씨앗이 열매를 맺기 시작했을 때 카자흐스탄 사람들은 난생처음 보는 농산물에 놀라워했다고 합니다.
한인들이 가져간 한 줌의 씨앗은 당장 먹을 수 있는 한 자루의 식량보다 생명력 있는 장래를 약속해 주었습니다.
씨앗은 무한한 생명의 에너지와 폭발하려는 신비한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씨앗은 함축된 생명이며 인내요 사랑입니다. 씨앗은 미래의 이야기이며 한없이 뻗어 오르게 하는 소망입니다.
미국에 조나단 에드워드라는 경건한 사람이 계셨는데 그분의 후손 400명을 조사해 보니까
대학 총장이 14명이 나왔고 교수가 100명, 복음 사역자와 선교사가 100명, 판사 변호사가 100여 명이 나왔고 그 옛날에 박사가 60여 명이나 되었다고 합니다.
그러니 부모가 복 받을 씨를 심으며 산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 보십시오.
우리 인간은 매일매일 미래를 위한 씨를 심으며 산다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악한 씨를 심으면 고통과 저주의 열매를 거두고 선한 씨, 복 받을 씨를 심으면 우리 자신과 후손들이 축복의 열매를 거두게 됩니다.
악한 씨를 심고 좋은 열매를 거두리라고 생각한다면 큰 착각이요,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또 심지도 않고 거두려는 욕망을 가진다면 그것도 큰 바보입니다.
매일매일 자신을 위해서 후손을 위해서 축복의 씨앗을 심으며 살아야 한다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인생은 씨의 열매로 먹고 살아 갑니다.
문민용 mymoon@goodnews.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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